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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한계상황

3주에 1700만원짜리 영어캠프

최근 A어학원에서 모집한 3주짜리 미국 방문 캠프 수업료는 1인당 총 1700만원이다. 이 캠프는 은행ㆍ증권 PB를 통해 고액 자산가나 유명 호텔 회원만을 대상으로 비공개 모집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자녀들이 대상이다. 미국 보스턴에 가서 하버드대 교수나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멘토들에게 강의를 듣고 대화를 하면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캠퍼스 산책을 하는 등 일정으로 구성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3~4주 미국 캠프 수업료가 40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정말 비싼 프로그램"이라며 "웬만한 직장인 연봉 절반 수준이었지만 관심 있는 사람도 꽤 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례 2

포항 외곽 농촌 지역 중ㆍ고등학교들은 방과 후 학교를 맡길 외부 업체를 찾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김진규 포항 대보중학교 교무부장은 "방과 후 학교 운영 업체들은 학생 수가 적어 수익이 별로 남지 않는 지방 학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영어회화 교육은 방과 후 학교 운영이 어려워 시교육청이 파견한 원어민 강사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원어민 강사가 일주일에 인근 서너 학교를 묶어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수업 효율성이 떨어진다.



교육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쪽에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천만 원짜리 캠프가 나오는 반면 한쪽에선 공교육도 제구실을 못하고 뒤처지고 있다. 심지어 방과 후 학교도 서울ㆍ지방, 강남ㆍ강북 간 격차를 벌리는 매개체로 전락하고 있다. 방과 후 학교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서울 강남 한 중학교는 경쟁률 수십 대 1을 거쳐 유명 영어학원 프로그램을 방과 후 학교로 유치했다. 학부모들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직접 학원들과 접촉하고 엄격한 심사를 하는 등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 영어학원 외에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업체 3~4곳이 방과 후 학교에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어학원 관계자는 "학원에서 받는 수강료 대비 5분의 1 가격이지만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부모들 사이에선 어학원들이 방과 후 학교로 학생들을 선점하기 위해 싼값에도 불구하고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 영어교육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반면 지방 농어촌 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방과 후 학교 업체를 구하지 못하는 곳이 태반이다.

송광호 정상제이엘에스 콘텐츠사업팀장은 "강남, 목동, 중계 등 교육에 대한 학부모 관심도가 높은 지역은 방과 후 학교 제안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교육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질문을 던진다"며 "어설픈 업체들이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질에도 크게 차이가 난다.

심정원 능률교육 방과후사업팀 차장은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수업료 최대치가 10만원인데 강남 지역은 프로그램만 우수하면 가격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반면 낙후 지역은 수업 프로그램보다 단가를 먼저 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방과 후 학교 선정 시 단가를 우선순위에 두면 짜깁기 영어 교재와 부실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영세 업체가 선정되는 사례가 많다"며 "이런 방과 후 학교는 수업을 받아도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업체들도 수익성 없는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하길 꺼리고 있다.

송 팀장은 "방과 후 학교 운영업체들이 일정 정도 학생 수가 보장된 학교에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게 사실"이라며 "지방도 대도시 아파트촌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농어촌 지역은 운영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은 파견 선생님이 근무조건에 만족하지 못해 그만두는 사례마저 많다.

경기 지역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별로 방과 후 학교를 지정하다 보니 지역이나 학교 역량에 따라 격차가 커져 오히려 양극화가 생기는 것 같다"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대형 학원이나 전문단체를 유치해 지정해주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방과 후 학교를 학교별로 선정하다 보니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 방과 후 학교 시장을 25% 차지하는 대교가 위탁사업 선정 과정에서 학교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금품을 건넨 혐의를 검찰이 수사 중이다. 대교는 분식회계를 통해 수십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교육업계에서는 방과 후 학교 비리가 공공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대형 교육업체 대표는 "방과 후 학교 사업을 검토하다가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 절대 안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과부가 직접 영어 수학 등에 전문성을 지닌 대형 학원을 유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업계 관계자는 "지방 등 지역 학생들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하려면 검증된 대형 업체들을 정부가 직접 유치해야 한다"면서 "교과부가 뒷짐만 지고서 계속 학교별로 중소 업체를 유치하라고 맡겨 둔다면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걸 기자 / 김제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