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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변동/경제흐름

`CPA = 고소득·취업보장` 등식 깨져…가점 없는 스펙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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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회계사 활동이 시작된 지 60년을 맞으면서 공인회계사(CPA) 2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파악하고 있는 공인회계사 수는 총 1만6000명. 실무 수습 기간 중인 `예비` 공인회계사 2000명을 제외한 수치다. 2004년에는 CPA 수가 5000명에 불과했다. 10년 만에 회계사 수가 3배로 늘어난 셈이다. 매년 1000명 가까이 회계사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2년 뒤인 2016년에는 본격적으로 공인회계사 2만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사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위상과 함께 근무 형태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회계사가 활동하는 영역이다. 예전에는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회계법인이나 기업 회계를 직접 담당하는 등 전문업무에 종사했다.

하지만 회계사 인원 수가 급증하면서 자격증을 활용하지 않는 회계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자격증을 취득한 1만6000명에 달하는 공인회계사가 모두 회계사로 활동하지 않는다. 회계법인에 소속돼 있지도 않고 회계감사 업무를 맡고 있지도 않은 회계사가 5000여 명에 달한다. 공인회계사 3명 중 1명이 휴업 중이라는 얘기다.

휴업 중인 공인회계사 자격증 소지자 중 11%는 행정부ㆍ금감원ㆍ사법부 등 국가기관에, 89%는 일반 기업체ㆍ금융사ㆍ법률사무소 등 민간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계법인에서 활동은 하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 회계사들이 늘어난 것도 최근 회계업계에서 찾을 수 있는 큰 특징이다. 2001년만 해도 여성 합격자 비율은 16.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여성 합격자 비율은 27.54%까지 늘어났다.

반면에 열악해진 근무환경으로 고충을 토로하는 회계사가 많다. 회계법인들이 감사수수료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계사들을 충분히 충원하지 않다 보니 밤 늦게까지 근무하는 게 일상화됐다.

회계사는 이제 평범한 자격증과 비슷해졌다. 회계사 초봉은 3800만원 정도로 삼성전자 초봉 4000만원보다 낮아진 상황이다. 1990년대에는 회계사 초봉 4000만원, 삼성전자 초봉 1800만원으로 회계사 초봉이 훨씬 더 많았다.

회계사 활동 영역 확대는 한 해 동안 선발하는 회계사 수가 1000명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 데 영향을 받았다. 뽑는 인원이 많아지고 대접이 예전만 못하자 회계사 시험 경쟁률도 줄어들었다. 2000년만 해도 회계사 555명을 뽑는 데 1만6014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30대1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에는 회계사 904명을 뽑는 데 9601명이 지원해 11대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경쟁률이 급감한 것은 응시자 수가 급감한 영향도 있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과거만큼 평생 먹고살 걱정 안 해도 되는 `철밥통` 구실을 해주지 못하게 되자 오랜 시간 회계사 시험 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대학생들이 응시를 꺼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학생들은 서울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다. 선배들에게 회계사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명문대 재학생들은 과거만큼 회계사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대 출신은 2012년 2차 합격자 수(59명)보다도 2013년 1차 합격자 수(29명)가 적어서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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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우수 인재가 회계사를 기피한다는 방증"이라며 "서울대생이 회계사 향후 전망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기가 막히게 잘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회계 지식은 향후 다양한 일을 하기 위해 기초 능력으로 요긴할 수 있지만 당장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스펙`으로는 꼭 필요하지 않다는 평가다. 금감원 관계자는 "굳이 회계사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금융 공기업에 취업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등 대부분 일반 대기업에서도 CPA 자격증 소지자에게 특별한 가점을 주지 않는다.

회계법인에서도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회계감사가 아닌 컨설팅이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외감법감사와 임의감사를 포함한 감사 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세무조정ㆍ용역 등 컨설팅 수입이다. 안진ㆍ삼정ㆍ한영 등 다른 4대 회계법인들도 컨설팅 수입 비중이 감사 수입보다 크다.

회계법인 관계자들은 "회계법인 컨설팅은 구체적인 수치(재무제표)에 기반한 컨설팅을 해주기 때문에 기업 관점에서는 일반 컨설팅업체의 자문 서비스보다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다"며 "회계법인에 컨설팅 업무를 맡기는 일반 기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계사 수가 증가하면서 회계사도 전문 분야가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유홍렬 한영회계법인 부대표는 "과거에는 회계감사가 모든 회계사 업무의 기본이라는 생각에 입사 직후 회계감사 업무부터 맡게 했지만, 요즘은 회계사들 희망에 따라 세무ㆍ재무자문 등을 맡겨 전문성을 쌓게 한다"고 전했다.

회계감사 업무 내에서도 `건설 부문` `전자 부문` 등 각 산업 분야에 특화한 회계사들이 많아졌다. 배홍기 삼정회계법인 부대표는 "짧은 감사 기간에 보다 정확한 회계감사를 하기 위해 회계감사팀 내에서도 산업별 전문 분야를 정해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