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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한계상황

"빚 갚지말라" 부추기는 사회 & "빚 내라" 부추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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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정상적으로 이자를 납부하던 박민웅 씨(48ㆍ가명)는 최근 선물투자로 큰 손실을 입었다. 빚을 갚지 못하던 박씨는 어느 날 문자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손쉽게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습니다.` 법무사와 연계된 브로커가 보낸 문자메시지는 박씨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결국 그는 전화를 걸었고 현재 법원에서 개인회생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법무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 200만원은 대부업체를 통해 빌렸다.

`빚 권하는 사회` 풍조가 `빚 갚지 말라고 권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 가계가 짊어진 빚이 1000조원에 달하면서 개인회생처럼 빚을 탕감받을 수 있는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27일 대법원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법원이 접수한 개인회생신청은 3만684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2760명)에 비해 62% 급증했다. 지난해 6만5171명이 신청해 2004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개인회생신청은 올해 이 신기록을 가볍게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이처럼 개인회생 신청이 급증하는 배경에 개인신용정보 불법 유통과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가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절차가 복잡하거나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다른 신용회복제도인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파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데 비해 개인회생은 늘기 때문이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2011년 1분기 1만9872명에서 올해 1분기 1만8838명으로 5.2% 감소했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채무자도 지난해 1~5월 2만9388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2만6788명으로 8.8% 줄어들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회생 신청자 중 15%가량은 모럴 해저드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법무사들은 소득 대비 채무 금액이 많을수록 개인회생 인가 확률이 높아진다며 채무자들을 부추겨 2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을 받도록 종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상환 가능성이 높은 채무자들도 적극적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개인회생제도 악용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무분별한 개인회생 신청을 차단하기 위해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신청 전에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절차를 의무화하는 정책적 대안과 함께 대출모집ㆍ중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 <용어설명>

개인회생제도 : 총 채무액이 일정 금액 이하(신용 5억원, 담보 10억원)이고 장래 계속적으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개인 채무자가 원칙적으로 5년간 수입 중 생계비를 공제한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잔존 채무에 대해서는 면책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법원에서 인가를 받아야 하며 2004년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