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soon만세 2007. 10. 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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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도는 생각의 깊이만 못하다. 정보가 제 아무리 빠르다 한들 속내 깊은 사람만 하랴. ‘산업의 쌀’ 역시 사람이다. 철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보다 약하고, 반도체도 사람이 만들어낸 기술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인재제일’ 시대다. “한 명의 천재가 천 명, 만 명을 먹여 살린다”(이건희 삼성 회장), “‘인내사(人乃社·사람이 곧 회사)”(최태원 SK 회장)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만약 사람을 잘못 골라 회사에 큰 손실이 미친다면? 몇 년 전 게임회사 컴투스의 박지영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박 대표는 고려대 재학 중 창업했다 해서 ‘여대생 최고경영자(CEO)’란 애칭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들은 신입사원 모집 에피소드 하나. 박 대표는 입사 지망생들에게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 여대생 지원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제 강점은, 음…. 애교입니다.” 순간 박 대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당연히 그 여대생은 탈락했다. “무릇 회사 일은 이성적으로 해야지, 감성적으로 해서는 곤란하죠. 그런 사람 뽑았다가 회사 망칠 일 있나요?”

지난달 18일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한국공학한림원 주최 CEO포럼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이 엉터리면 재앙이 온다.” 박 회장은 이 말을 하면서 막대한 기금을 굴리는 한 공공기관의 사례를 들었다. 지나치게 몸을 사린 투자로 인해 주식 호황기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 공공기관도 나름대로 항변이 있고 일부에 국한된 얘기겠으나, 안정된 조직에 안주해 한번 해볼 만한 모험을 삼갔다는 지적을 면키는 어렵겠다.

그나마 복지부동(伏地不動)은 진짜 재앙을 일으키는 사람보단 낫다. 제갈공명은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마속에게 전략요충지 가정을 지키는 일을 맡겼다. 이때 마속은 엄청난 실수를 범하고 만다. 길이 좁아 길목만 잘 지키면 될 텐데, 산 위에 진을 쳤다. 공명의 라이벌 사마중달은 쾌재를 불렀다. “지혜로운 공명도 사람 보는 눈은 틀린 모양”이라며 산 밑을 포위하고 식수 공급을 막았다. 촉(蜀)나라 군대는 대패했다. 공명은 “형편없는 자에게 막중한 일을 맡겼다니…”라고 탄식했다. 마속은 차라리 복지부동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이처럼 잘못된 인재는 조직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23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영국 베어링은행도 한 딜러가 파생금융상품에 무모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수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1995년 파산했다.

재앙이 두렵다고 인재발굴을 소홀히 한다면 이 역시 재앙이다. 3년 전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감독을 지낸 거스 히딩크와 움베르토 코엘류를 비교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히딩크는 연고나 파벌에 휘둘리지 않고 능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 서로 경쟁시켰다. 반면 코엘류는 월드컵 4강 선수들 개개인의 명성에 안주, 인재육성에 실패했다.

이래저래 인재발굴도 힘들고, ‘진짜 인재’ 구별도 어렵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후자다. 인재인 줄 알았더니 회사 말아먹을 엉터리라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굳이 모두 다 인재가 아니어도 좋다. 묵묵히 일하는, 가능성 있는 범재도 필요한 게 조직이다. 누구나 선봉에 설 수는 없는 일. 지휘자가 있으면 단원도 있어야 한다. 병사들 없이 장교 혼자 “돌격, 앞으로!” 할 순 없다.

한가위 연휴가 끝났다. 서서히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 더불어,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나 몰라라 하거나 조직의 이익보단 자기 실리만 챙기는 사람은 아닌지, 무모하게 일을 꾸며 재앙을 일으킬 엉터리는 아닌지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점이다.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