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soon만세 2007. 9. 20. 11:36
[분수대] 동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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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벼슬 자리를 내놓고 농촌에 은거했던 약천 남구만(1629~1711)이라는 인물이 읊은 시조다. 새벽 동틀 무렵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 이어 소를 칠 목동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물음. 고개 너머에 있는 밭이랑을 언제 손보겠느냐는 권농(勸農)의 언사로 짜였다.

 동이 터 오면 먼저 빛이 닿는 동녘 창의 이미지가 선연하다. 아울러 부산한 가운데서 풍겨 나는 삶의 활력과 희망이 담겨 있다.

 중국에서 동창은 다른 이미지다. 여진족의 금(金)에 대항해 싸우다 모함으로 죽은 송(宋)의 명장이자 민족 영웅 악비(岳飛)와 관련된 고사에 등장한다. 그를 사지로 몰고 간 진회(秦檜)는 옥에 갇힌 악비를 죽이려 하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천고의 간신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충정이 가득한 악비를 옹호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창 아래에서 이리저리 잔꾀를 내보려던 진회에게 부인 왕(王)씨가 다가온다. 화로에 담겨 있던 부젓가락을 꺼낸 왕씨는 재 위에 글자를 쓴다. “호랑이를 놔주기는 쉽지만 잡아 들이기는 어렵다(縱虎易兮擒虎難)”는 내용이다. 속뜻인즉 “빨리 악비를 죽여라”였다.

 악비를 사지로 몰았던 진회도 늙어서 죽는다. 도사를 모셔 망자의 상황을 알아본 왕씨는 기겁을 한다. 그 죄업이 큰 탓인지 진회가 지옥에서 온갖 벌을 다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부(冥府)에서 도사를 만난 진회는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도사님, 얼른 가서 내 아내에게 전해주시오. 동창 아래에서 꾸몄던 계략이 다 들켜버렸다고.”

 ‘꾸민 모략이 남에게 들통나다’라는 뜻의 ‘동창사발(東窓事發)’이라는 성어의 유래다. 진회가 악비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역사적 추정에 영웅을 기리려는 민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붙여 윤색을 했다. 전설 수준이기는 하지만 동녘의 창을 두고 보이는 한국과 중국의 정서적 차이가 눈길을 끈다.

 한국 사회에도 이제 ‘노고지리 우짖는’ 동녘의 창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많아졌다. 거짓과 부정이 남에게 들켜 번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밝아 오는 아침이 두려울 것이다. 신정아·정윤재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도 그러할 게다. 이들뿐인가. 늘 이어지는 부정과 부패로 한국 사회는 아직 완연한 ‘비리 공화국’이다. 한국의 동녘 창 이미지가 이제는 중국식 성어의 뜻으로 바뀔 법하다. 도덕을 잃은 한국 사회의 자업자득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